2편 : 연필심은 정말 납일까? 연필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연필을 깎다 보면 나무 한가운데 검은 심이 들어 있는 단순한 구조가 보입니다. 버튼도 없고 잉크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종이에 대고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글씨가 나타납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 익숙하게 사용했던 물건이라 저도 연필의 구조를 특별히 궁금해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필에 대해 하나씩 찾아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검은 연필심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흔히 말하는 '납'이 정말 들어 있을까요? 그리고 연필 옆면에 적힌 HB와 2B 같은 표시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평범한 연필 한 자루에도 재료의 발견과 제조 기술의 발전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연필심의 정체는 납이 아니라 흑연이다

연필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연필심에 납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반적인 연필의 검은 심은 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 재료는 흑연(graphite)​입니다.

흑연은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입니다. 종이에 흑연을 문지르면 미세한 입자가 종이 표면에 남으면서 우리가 보는 검은 선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지금도 연필심을 'pencil lead'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납을 뜻하는 lead라는 단어가 남아 있으니 실제로 납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혼동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16세기 영국에서 품질이 좋은 흑연 광상이 발견된 뒤 흑연이 필기 등에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흑연의 성질과 정체가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납과 관련된 물질로 오인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흑연이 납과는 다른 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언어에는 과거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평소 사용하는 물건의 이름과 실제 재료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입니다.

흑연 덩어리는 어떻게 지금의 연필이 되었을까?

초기의 흑연 필기구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반듯한 나무 연필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흑연 자체를 손으로 잡고 사용하면 손에 검은 가루가 묻기 쉽고, 재료가 부러지거나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흑연을 보다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감싸서 사용하는 방법이 등장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흑연을 나무 사이에 넣어 보호하는 형태가 발전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나무 연필의 기본적인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좋은 천연 흑연을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니콜라 자크 콩테(Nicolas-Jacques Conté)는 흑연 가루와 점토를 혼합해 연필심을 만드는 제조법을 발전시켰습니다. 흑연과 점토의 혼합 비율 등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필기 특성이 서로 다른 연필심을 만드는 길도 열렸습니다.

우리가 문구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경도의 연필은 이러한 제조 기술의 발전과 연결됩니다.

연필은 단순히 흑연 조각에 나무를 씌운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재료를 적절히 배합하고 원하는 필기 특성을 만들어내는 제품인 셈입니다.

HB와 2B는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연필을 자세히 살펴보면 옆면에 HB, B, 2B, H 같은 문자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 때는 미술 시간에 4B 연필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거나 시험용으로 HB 연필을 챙기면서도 표시의 의미까지 생각해 볼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H는 단단함(Hardness), B는 검은 정도(Blackness)​를 나타내는 체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H 계열로 갈수록 심이 상대적으로 단단하고 선이 옅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B 계열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진한 흔적을 내기 좋습니다. 숫자가 붙으면 해당 특성의 정도를 구분합니다.

HB는 그 중간 영역에 있는 익숙한 연필입니다.

다만 연필의 등급 체계와 실제 필기감은 제조사나 제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2B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회사의 연필이 완전히 동일한 진하기와 감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여러 연필을 써 보면 이 차이를 꽤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글씨를 적어도 어떤 연필은 종이를 긁듯 단단하게 느껴지고, 어떤 연필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진한 선을 남깁니다. 그림을 그릴 때 여러 종류의 연필을 바꿔 사용하는 것도 이런 성질의 차이를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연필은 왜 육각형이 많을까?

문구점에서 나무 연필을 몇 자루 꺼내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둥근 연필도 있지만 육각형 몸통을 가진 제품이 상당히 많습니다. 색연필 중에는 삼각형 몸통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연필의 단면 모양에는 사용성과 제조상의 이유가 함께 작용합니다.

육각형 연필은 책상처럼 평평한 곳에 내려놓았을 때 둥근 연필보다 쉽게 굴러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는 평평한 면이 있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제조 과정에서 목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문제 역시 연필 형태와 관련됩니다.

반면 둥근 연필은 손에서 돌려가며 사용하기 편하게 느껴질 수 있고, 삼각형 연필은 손가락이 놓이는 위치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제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책상에서 필기할 때는 이런 차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둥근 연필을 경사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가 굴러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 나면 육각형이라는 모양이 단순한 디자인만은 아니라는 점을 실감하게 됩니다.

매일 사용하는 도구의 작은 형태에도 나름의 이유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잉크가 없어도 연필이 오랫동안 쓰이는 이유

볼펜과 샤프펜슬, 태블릿 스타일러스까지 등장했지만 나무 연필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연필의 장점 중 하나는 구조가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별도의 잉크통이나 복잡한 기계 장치가 필요하지 않고, 적절한 표면만 있다면 바로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연필로 쓴 글씨를 지우개로 비교적 쉽게 수정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입니다.

또 연필심이 종이 위에 남기는 느낌은 펜과 다릅니다. 힘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선의 농담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필기뿐 아니라 스케치와 드로잉에서도 폭넓게 사용됩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노트를 처음 사용할 때는 볼펜보다 연필을 먼저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볼펜으로 쓴 글씨는 수정하기 번거롭지만 연필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차이지만 기록을 시작할 때 느끼는 부담이 줄어드는 편입니다.

이처럼 오래된 기록 도구가 새로운 도구의 등장과 동시에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각각의 도구가 제공하는 사용 경험과 역할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평범한 연필 한 자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필심은 납이 아니라 흑연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며, 흑연과 점토 등을 이용한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연필을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H와 B 같은 표시는 이러한 연필의 성질을 구분하는 방법이고, 육각형 몸통처럼 당연하게 생각했던 외형에도 사용상의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글에서 살펴본 종이가 기록을 담는 바탕이라면 연필은 그 위에 흔적을 남기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연필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동반자가 있습니다.

잘못 남긴 흔적을 없애는 지우개입니다.

지금은 연필과 지우개를 한 세트처럼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지우개가 등장하기 전에도 연필 자국을 지워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 보면 꽤 뜻밖의 물건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우개가 없던 시절의 수정 방법부터 고무 지우개가 탄생하고 발전한 과정까지 살펴보겠습니다.

FAQ:

Q1. 연필심에는 정말 납이 전혀 들어 있지 않나요?

일반적인 흑연 연필의 심은 납을 주재료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흑연과 점토 등을 이용해 원하는 특성을 갖도록 만듭니다. 영어에서 연필심을 'lead'라고 부르는 표현 때문에 납이 들어 있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흑연과 납은 서로 다른 물질입니다.

Q2. 2B 연필은 HB보다 무조건 좋은 연필인가요?

좋고 나쁨의 차이라기보다 용도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B 계열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진한 선을 내는 데 유리하고, H 계열은 단단하고 옅은 선을 내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필기, 제도, 스케치 등 사용 목적에 맞춰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Q3. 연필로 쓴 글씨는 왜 지우개로 지울 수 있나요?

연필로 글씨를 쓰면 흑연을 포함한 미세한 물질이 종이 표면에 남습니다. 지우개로 문지르면 지우개 재료와 마찰 등의 작용으로 종이에 붙어 있던 흑연 입자가 떨어져 나와 지우개 쪽으로 옮겨가면서 글씨가 옅어집니다. 종이에 스며드는 잉크와는 기록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연필 자국은 상대적으로 수정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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